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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눈덩이. 사람들이 스발라헤이마에 붙인 별명이다. 이 얼어붙은 행성은 무자비하지만 천연 전략 자원이 풍부하다.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모두가 차지하려 드는 곳, 그것이 바로 스발라헤이마다. 스발라헤이마를 발견한 건 판오세아니아의 탐사선 미드가르드였고, 절대강국은 곧바로 탐사와 개척 절차를 시작했다. 당시까지는 어느 열강이 행성 하나를 발견해 개척을 시작한다면 해당 행성은 온전히 해당 국가의 소유로 간주됐다. 네오테라나 유탕과 셴탕, 바루나 개척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국제법상에서 규정된 건 아니었고, 당시 행성 개척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이런저런 이유로 경쟁 열강들이 외행성 병력 투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사선 미드가르드가 스발라헤이마를 발견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대 우주 탐사 프로그램의 결과가 신통찮았던 유징의 당은 판오세아니아가 또다시 새 영토를 손에 넣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했다. 당은 해군사령부 최고위 장성들을 호출했고, 제국 해군에 스발라헤이마로 탐사 부대를 보낼만한 도약 가능 함선이 두 척 있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리고 인류계의 역사는 다시 한번 변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유징 함대에 판오세아니아인들은 기겁했다. 궤도 방어 기반 시설을 갖추기는커녕 성계에 흩어진 배 몇 척으로는 유징 해군이 보낸 전투함과 맞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기습적으로 난입한 덕에 제국 관군은 판오세아니아가 니플헤임이라고 부르는 영역의 대다수를 성공적으로 점거했다. 니플헤임에 있던 판오세아니아인이라고는 소수의 과학 탐사단 정도였고, 이들은 들이친 관군에 금세 쫓겨나고 만다. 유징은 해당 지역에 판오세아니아 시민이 존재하지 않으며 공식적인 영토 선포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지역의 이름을 황디로 다시 짓고서는 영광스러운 제국의 일부라고 선언하는 칙령을 반포했다. 해당 칙령은 적절한 시간에 맞춰 O-12 당국에 제출됐다. O-12를 통한 외교적인 접근은 기나긴 법적, 관료적 절차로 인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판오세아니아는 경쟁자의 방식을 받아들이고서 기정사실 전략으로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절대강국은 유징을 스발라헤이마에서 내쫓는다는 목적 아래 군사 공세를 개시하는데, 결코 공식적으로는 선포된 적 없는 이 갑작스러운 전쟁은 이후 정착지 위기라 불린다. 분쟁 초기, 판오세아니아 병력들은 스발라헤이마 현지 지형 상황에 더 익숙했고, 유징이 스발라헤이마에 배치한 병력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어 절대강국에게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판오세아니아는 관군을 패퇴시켜 유징측 영토를 어느 정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징은 곧 행성에 배치된 병력을 재규합하는 동시에 신속히 영토를 수복할 지원군을 파병하여 굳건한 전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분쟁은 곧 교착 상태에 진입했다. 그리고 정착지 위기가 끝을 맞이하는데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건 바로 O-12였다. 양측 열강이 스발라헤이마로 보내는 함선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각 해군이 궤도에 위치를 잡으면서 폭력의 정도가 곧 기하급수로 확대되리라 예상한 O-12는 새로 받은 권한을 행사해 분쟁을 막았다. O-12는 유징이 얻은 영토 대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고 국경선을 확립했다. 새로 그려진 국경선은 제국 관군이 처음으로 도착한 당시 만들어졌던 국경선과 매우 흡사했는데, 이는 즉 판오세아니아가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한 영역은 곧 유징의 소유가 됐다는 뜻이다. 대신 절대강국은 분쟁을 틈타 독립을 선포했던 소르키스텐 지역 거주민들을 유징이 지원한 데 대한 보상을 받게 됐다. 해당 행위는 주권 국가의 내부 문제에 대한 외세의 개입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판오세아니아는 스발라헤이마 궤도권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결말로는 현지 당국과 거주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달랠 수는 없었다. 스발라헤이마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행성을 날강도들에게 뜯겨나간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NKAH(Nordiske Krigere av Heimdall), "헤임달의 노르드 전사단"이라는 초국수주의 과격 집단이다. 이 집단은 판오세아니아인의 도덕적,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스발라헤이마 행성 전체가 절대강국의 소유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NKAH는 스발라헤이마의 유징은 단순히 판오세아니아의 주권에 대한 모욕을 넘어 그 자체로 침략 행위라고 간주하며, 침략자들은 무장 투쟁으로 몰아내야만 한다고 외친다. 불행히도 NKAH의 행동은 선전과 선동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경지대의 일부 황폐한 지역에 훈련 시설을 설치한 상황이다. 이런 시설에 거주하는 NKAH 단원들은 언젠가 조국을 위해 무기를 들 때를 위해서라며 게릴라전과 얼어붙은 기후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NKAH 단원들은 유징이 나머지 판오세아니아 영역을 차지하려고 언제라도 대규모 공세를 펼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NKAH의 담론은 갈수록 과격해졌고, 이내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 계획을 수립했다. 여러 전문가들은 극단화되는 NKAH의 모습을 비판했지만, 사실 여러 판오세아니아인들은 도의적으로 자신들 차지여야 할 스발라헤이마를 유징이 덥석 뜯어갔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NKAH의 태도에 동조하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신념이 스발라헤이마에 사는 판오세아니아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느낀 NKAH는 행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스발라헤이마 정부가 본디 자기들 것인 행성을 깔고 앉은 유징에 대해 보다 전향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길 기다리다 지친 조직은 여러 유징 초소에 일련의 공격을 가했다. 판오세아니아 정부가 유징에 선전포고하고 황디 정복 작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공격의 목적이었다. 이들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징은 NKAH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여러 NKAH 훈련 시설이 관군의 체계적인 폭격에 얼음 구덩이로 변했다. 비극적이게도 훈련시설 중 하나는 더 많은 활동가를 끌어모으기 위해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여러 지지자들과 단원들의 아이들의 환영식을 열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들의 시체가 담긴 영상이 온 마야로 퍼지고, 판오세아니아의 보복 공격이 정당화되면서 소위 눈보라 유격전이라 불리는 사태가 시작된다. 당시에는 네오테라와 유탕 양측 모두 이 위기를 공론화되어 파라디소나 지구 같은 다른 행성까지 분쟁이 격화되는 걸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눈보라 유격전은 전략적으로 이루어진 전쟁이 아니라 일련의 습격과 보복, 역습으로 엉키고 설킨 비공식 분쟁으로 전개됐다. 결국 분쟁은 행성 지표면으로 국한되어 양측 궤도권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분쟁 초기는 초강대국의 의향대로 전개됐다. 죽은 아이들의 영상에 격분한 판오세아니아 복합군은 NKAH 세포 조직의 지원을 받아 국경 각지의 유징 진지로 돌진했다. 연이은 전격전 끝에 복합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진지 여럿을 차지하며 스발라헤이마 분할 상황에 변화를 예고했다. 일단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초기 작전의 성공에 취한 스발라헤이마 사령부는 관군의 회복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네오테라의 증원 병력 파견 제안을 거부했다. 끔찍한 실수였다. 예마오라 불리는 유징 특수작전팀이 판오세아니아의 주요 거점을 목표로 고위험 작전을 전개하며 보급 체계와 통신 체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어진 혼란 속에 관군은 병력을 재규합하여 연이은 역공을 가해 판오세아니아 복합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전 국경 지대 주변에 있던 여러 민간 정착지가 몰아치는 유징의 공세에 위험에 빠졌다. 판오세아니아 지휘관들이 본래 맡은 임무는 공세에 버티며 자신들이 점거한 진지를 지키는 것이었으나, 산 피에트로 디 네오테라에서 직접 내려온 직권명령까지 보게 되자 이들도 전략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판오세아니아 중앙정부는 단 하나의 판오세아니아 정착지를 잃는 것도 용납할 수 없으며, 제국의 거점을 정복하는 것보다 정착지를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맞추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판오세아니아 병력들은 재배치되어 정착지를 방어하기 위한 긴급 방어선을 구축했다. 유징 관군은 이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지만, 공세는 큰 대가만 치르고 실패로 돌아갔다. 관군의 북부 공세는 이처럼 속도가 꺾였지만, 중부 전선은 결정적인 공세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마침내 분쟁 초기에 잃었던 거점들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상당한 병력을 북부 방어선에 보낸 판오세아니아는 화력과 병력 모두에서 압도당했고, 결국 공세를 방어하는데 실패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승리는 백기군의 것으로 돌아갔다. 분쟁은 스발라헤이마의 바다로까지 번졌지만, 폭풍우 시기가 겹치며 해상 작전 전반이 큰 제약을 받으면서 전체 분쟁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폭풍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분쟁 기간 내내 스발라헤이마의 해저는 폭발과 울부짖는 소리로 요동쳤다. 이른바 이 스발라헤이마 잠수함 전쟁은 실질적으로 눈보라 유격전과 동시에 전개됐고, 그래서 더 치열하고 무참한 양상을 보였다. 양측 열강 모두 네슘 및 테슘 채굴 기지나 수중 농장, 지열 발전소 같은 해저 주거지가 여럿 있는데, 이 모두가 파괴하는 것보다는 빼앗는 걸 우선해야 하는 고가치 목표물이었다. 문제는 해저 시설은 포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발라헤이마 해저 분쟁은 경전투함과 승함병력 위주로 전개됐음에도 종국에는 양측 모두가 큰 손실을 잃었다. 몇몇 기지나 공장은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해저 시설들은 사실상 손상으로 인해 거주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버려지고 만 것이다. 분쟁이 소강 상황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교전들도 적의 방어선을 뚫기 위한 시도 정도로 제한됐다. 이에 O-12는 여러 외교적 수단을 활용해 분쟁을 종식한다. 컨실리엄의 외교관들은 NKAH의 공격이 판오세아니아 정부의 인가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제국은 적절한 대응을 했음을 확고히 했다. 비록 이렇게 끝이 나며 분쟁은 스발라헤이마의 지정학적인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만, 양측 열강 모두 프로파간다 측면에서는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양측 시민들 모두의 가슴에서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물선 "로히니의 깜박임" 호가 스발라헤이마 상공에서 파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판오세아니아 정부와 여론 모두 즉각적으로 유징을 비난하면서 보복 작전이 시작됐고, 이는 신 개척전쟁이라 불릴 사건으로 이어진다. 스발라헤이마는 인류계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이 전쟁의 주요 전장 중 하나였고, 동시에 전화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행성이었다. 자립이 불가능한 극한 환경이라는 스발라헤이마 특유의 상황도 이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쟁 당시 다른 전역에서는 정밀타격이 주로 전개됐지만, 스발라헤이마의 교전 당사자들은 무지막지한 타격을 가하는데 보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전쟁의 결과 판오세아니아의 소콜로프 지역에 있는 아에기르 같은 대도시나 황디 중부의 효쇼 돔 같은 실험적인 돔도시 여럿이 이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버려지게 된다. 아직까지도 아에기르 재건 사업은 여전히 미진한 상황이고, 효쇼의 폐허는 유령과 넝마주이만이 떠도는 얼어붙은 비석일 뿐이다. 하지만 신 개척전쟁이 남긴 가장 소름끼치는 결과는 버려진 지대나 무인지대에 남아서 여전히 작동 중인 자동화 무인 병기들이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무인 병기들은 스발라헤이마에 매우 실질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는데, 끔찍한 기후나 전투 피해로 인해 피아식별 장치가 손상을 입은 자동화 병기들이 누가 접근하기만 하면 바로 사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개척전쟁 종결 이후로 이런 자동화 병기로 인해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나왔음에도, 양측 열강 모두 자동화 병기 제거를 거부하고 있다. 언제 다시 이 무기들을 써먹을지 모른다는 이유다. 실질적으로 분쟁 이후 스발라헤이마에는 제대로 된 평화가 돌아온 적이 없다. 이 행성에는 테슘이나 네슘같은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신소재가 풍부하다. 이는 스발라헤이마의 영토를 지배하고 생산 지역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국경 분쟁과 습격, 산업 스파이와 사보타주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 행성은 "코드 인피니티"의 개념 그 자체나 다름없다. 어둠 속의 기밀 작전을 통해 전개되는, 차갑고 은밀한 전쟁 말이다. - 마야 전체에서 구독 가능한 마나하임 대학의 정보 채널 오라클의 "행성 이야기" 시리즈의 "스발라헤이마" 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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